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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당파의 힘에 의해 아비가 죽자 벽파의 수장과 비밀편지를 통해 편지정치를 하는 정조. 하지만 상대를 믿을 수 없기에 얼굴표정에서 진실을 훤히 읽어내는 응참을 불러들여 미래를 위한 수를 두려고 한다. 하지만 정조의 의도를 안 벽파의 수장 심환지는 오히려 응참을 흔들어 사태는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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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응참은 날카로운 눈썰미로 투전판을 휩쓸고 다닌다. 그러다가 어느 날 끌려간 관아에서 정약용 대감을 만나게 된다. 대감은 응참에게 10년이 묵은 의문이 있는 살인사건을 조사하게 한다. 응참은 얼굴에 드러나는 거짓을 귀신같이 꿰뚫어 보는 눈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그리고 며칠 후에 응참은 집에 들이닥친 금위군에 이끌려 궁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곳엔 금상인 정조가 있었다. 정조는 응참의 실력을 확인한 이후에 명을 하나 내린다.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벽파의 수장 심환지의 얼굴에서 거짓을 밝혀내라는 것이었다.

임금의 편지를 들고 심환지를 찾아갔으나 대감은 한 치의 표정도 내비치치 않았다. 되려 대감의 얼굴을 살피다가 대감에게 임금의 의중을 들키고 만다. 심환지는 역으로 임금의 눈이 된 응참을 흔들기 시작한다. 임금의 숨겨진 의도와 의문을 들추게 하여, 끊임없이 응참에게 의문을 품게 만든다.

그때, 임금과 대감의 사이를 이간질하는 이한익이라는 자가 나타난다. 이한익의 뒤를 쫓던 응참은 점점 더 이한익이 임금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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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꿈에서 소재를 얻어 글을 쓰는 이야기꾼이다. 제6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우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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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속으로

응참은 패를 쥔 이들의 얼굴을 주욱 훑어보았다. 모두의 얼굴에 순식간에 스쳐지나가는 표정들이 또렷하게 보였다. 응참은 어렸을 때, 도적소굴에 팔려가 그 곳에서 자라왔다. 도적 두목은 응참이 멀리있는 것도 매의 눈으로 살피고 매의 부리처럼 그 변화를 낚아챈다고 하여 그를 응참이라 불렀다. 응참은 사람들의 얼굴에 스치고 지나가는 찰나의 표정을 능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게다가 그 표정들이 감추는 진심까지도 훤히 내다보였다.

쓰개치마를 어깨에 걸친 여인의 미간과 눈썹이 올라서고 입 끝이 귀 밑으로 늘어났다가 순식간에 제자리로 돌아온다. 놀람과 두려움이 인 것이다. 이러한 찰나의 표정은 응참이 상대의 패를 훤하게 꿰뚫어 볼 수 있게 하였다. 패가 낮은 이들은 불안한 내색을 비칠 것이요, 높은 패를 쥔 자들은 얼굴에 떠오르는 기쁨을 감추기가 어려운 법이다.

순식간에 멍석 안으로 엽전이 쌓였다. 응참의 교활한 수에 한 번 당한 터라 모두들 차안대(옆을 볼 수 없도록 말에 씌우는 안대)를 쓴 말 마냥 무작정 덤벼든다. 마지막 패가 돌고 술띠를 두른 사내가 응참을 노려보며 열 냥을 더 얹는다.

“이번에는 어떤 수작도 안 통할 거외다.”

여인네와 다른 작자들도 분위기에 휩쓸려 돈을 던져 넣는다. 응참의 차례가 되었다. 응참은 엽전을 꺼내 손 안에서 만지작거렸다. 모두의 시선이 응참에게 멈춰있다. 응참의 앙다문 입술이 뻘을 머금은 조개마냥 살포시 벌어졌다.

“내 조선팔도를 떠돌아다니다 보니 한 번은 아주 똑같이 생긴 쌍둥이를 만난 적이 있소이다.”

응참의 갑작스런 이야기에 술띠를 두른 남자의 이마에 균형이 다시금 어긋났다.

“똑같은 이목구비에 말투도 똑같고 게다가 옷까지 판에 박게 차려입으니 사람들은 누가 형이고 누가 아우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하더이다. 이 형제는 각기 여인을 만나 성가(成家)하였는데, 그 안주인들조차도 그 형제를 구분하지 못하였다는 거 아닙니까. 헌데 나는 단박에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지 알았소이다.”

응참이 호쾌하게 웃으며 엽전 스무 냥을 던져 넣었다. 둘러앉은 이들의 얼굴에 찰나의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모두들 제 패를 내려놓고 만다. 하지만 술띠를 두른 남자는 제 패를 내려놓지 않고 응참을 노려본다.

“나를 홀리려는 수작인가 본데, 어림없소이다.”
“내가 그 형제를 어떻게 구분해냈는지 궁금하지 않으시오? 서로 판에 박듯이 닮았으니 친해야 마땅할 이 두 형제는 사이가 무척 좋지 않았소이다. 동생이 제 형을 미워하기에 자신의 얼굴에서 형제를 보고, 자신의 버릇에서 형제를 느끼니 그 미움의 골이 깊어만 갔지요.”

술띠를 두른 남자도 엽전 스무 냥을 던져 넣는다. 그리고 자신의 패를 까보인다. 2와 6의로 그 합이 8이었다.

“자, 땡이나 가보가 아님 그 아가리 닫고 물러가쇼!”

하지만 응참은 자신의 패를 까보이는 대신 패를 무릎아래에 놓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헌데 하루는 동생이 죽은 채로 발견이 된 것입니다. 고을이 발칵 뒤집혔더랬습니다. 마을 사람 모두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이 형을 가리킨 건 말할 필요도 없지요. 추포되어 원님에게 끌려간 형은 억울함을 호소하였습니다. 동생을 미워는 하나 죽일 만큼은 아니라고 말이지요. 아무리 주리를 틀고 장을 때려도 형이란 자는 제 말을 도무지 바꾸지를 않았습니다. 원님은 고민에 빠졌지요. 허나 그 소식을 접한 저는 사건의 본말을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잡소리 집어 치우고 패를 까라 이 말이오!”
“동생이 거울을 들여다보며 느낀 참을 수 없는 증오란, 자신을 닮은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컸기 때문이겠습니까? 아니면 형제를 닮은 자신을 증오하던 마음이 컸기 때문이겠습니까?”

술띠를 두른 남자가 이빨을 드러내며 응참을 노려본다. 응참은 여유 있게 자신의 패를 집어 들었다.

“사람들은 말입니다. 자신이 진정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을 모를 때가 많습니다. 모든 걸 남과 비교하니 자신이 가진 게 진정 얼마 만큼인지 모르기가 한량(限量)없지 않겠습니까? 나는 말입니다. 사람의 얼굴을 이렇게 딱 보면, 그 자의 마음속이 척하고 보인다 이 말입니다. 그 안에 어떠한 마음이 들어서 있는지. 또 그게 얼마나 큰지 말입니다.”

응참이 자신의 패를 까보인다. 2와 7로 비칠 가보다. 술띠를 두른 남자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 작자가, 나를 희롱하는 것이냐?”

응참은 사내의 얼굴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눈썹이 올라섰으나 화가 나지 않은 모습이다. 오히려 치욕을 느끼는 표정이다. 판돈을 잃었다고 분란을 일으킬 얼굴은 아니다. 응참은 태연하게 손을 뻗어 판돈을 자신 앞으로 끌어당겼다.

“투전판의 도리라는 게 본래 그렇습니다. 세상 모든 군상들이 투전판에 모여드는 지라 아수라라고도 합니다. 이 아수라에서는 한 쪽이 모두 따던가, 아니면 잃은 쪽이 포기를 해야 끝나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응참이 얼굴가득 웃음을 띄운다. 그러자 술띠를 두른 남자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몸을 돌려 투전판을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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