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실버 파라다이스

드라마 이강민

줄어든 인구, 급속화된 고령화 그 속에서 노인들이 맞이할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

작품소개

인구절벽으로 위기를 맞은 멀지 않은 미래의 대한민국.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강제수용소에 갇혀야만 했던 X세대 노인들의 저항과 탈출기를 담은 퓨처레트로 휴먼드라마.
작품소개 열기

시놉시스

2038년 11월 13일. 노인층의 증가와 이에 따른 연금 및 복지비용의 급격한 증가로 파산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계엄당국은 무자녀 노인들과 성소수자들을 ‘인구절벽을 초래하여 대한민국을 위기에 빠뜨린 반역자’라는 혐의로 체포하였다. 노인들이 수시로 체포되는 분위기 속에서 노인들은 사회를 좀먹는 존재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이에 편승한 계엄당국은 체포대상을 한자녀 노인들로 확대하고 노인에 대한 의료서비스도 통제하기 시작했다. 계엄당국은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시 변두리와 지방의 아파트를 활용하여 집단 강제수용시설을 마련하고 이를 ‘실버 파라다이스라’ 불렀다. 하지만 실버 파라다이스에서 탈출하는 노인들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계엄당국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과연 이들의 저항은 성공할 수 있을까?

시놉시스 열기

작가소개

2019년, 칠레에서 개기일식을 경험한 후 회사를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함. 열정 넘치는 아마추어천문인으로 별지기들의 바이블이라 평가받는 ‘딥스카이 원더스’를 번역출판하였음.
작가소개 열기

작품속으로

대한민국에서 비상계엄이 선포된 것은 총 열아홉 차례라고 한다. 그 중 세 차례가 내가 태어난 1973년 이후 발생했다. 하지만 그 세 번의 비상계엄 중 마지막 계엄조차도 내 나이 여덟 살이던 1980년의 일이었다.

워낙 어렸던 나는 비상계엄이 내려졌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내 나이 예순 여섯에 맞는 이번 비상계엄이 나로서는 처음으로 맞는 계엄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 계엄의 이유라는 게 어처구니없었다. 생산 활동에 종사하지 않고 오직 연금만으로 생활하는 노인이 절대다수를 차지해서 국가가 도산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집으로 돌아와 뉴스를 보고서야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의 실상을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박고 있었던 그 노인들은 모두 자식이 없는 노인들이었던 것이다. 즉, 생산 활동에 종사할 인구를 국가에 제공해주지 않아 국가 파산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 그 노인들이 받는 혐의였다.

저출산이라는 개념은 IMF를 최단 기간에 졸업하고 월드컵 4강 진출로 온 나라가 축제분위기였던 2002년에 이미 사회적 과제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또한 생산연령인구가 정점을 찍은 것도 무려 26년 전인 2012년이었으니 저출산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후 모든 정치세력들은 하나같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경제는 얼어붙기 시작했고 많은 기업들이 상시해고를 통해 본격적으로 고용인원을 줄여나갔다. 내가 다니던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희망퇴직이나 정리해고를 한 번도 실시하지는 않았지만 그건 퇴사 프로세스를 공식화할 경우 발생하는 추가비용을 아끼기 위한 꼼수였을 뿐이었고 물밑에서는 지속적으로 직원을 해고하고 있었다.

당시 딩크족으로 살면서 휴가 때마다 해외여행을 즐기는 동기 사내커플이 있었다. 그 부부는 둘 다 회사생활을 아주 잘했다. 윗사람들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었고, 사내혁신경연대회에 빠짐없이 아이디어를 내고 가끔은 수상도 할 만큼 회사 생활을 잘하는 부부였다.

일렬로 끌려가는 노인들의 영상을 보니 그 동기 부부가 생각났다. 아이가 없어서 홀가분하겠다고 얘기하면, 누가 너한테 애 낳으라고 했냐며 날선 반응을 보이기도 했었다. 더 늙기 전에 인생을 즐기겠다고 둘은 같은 날 회사를 그만두었다. 들리는 말로는 제주도에 땅도 있다고 하고, 돈도 많이 모아놓은 것 같고, 아이가 없어서였겠지만 그렇게 자신 있게 회사를 그만둘 수 있는 동기 부부가 정말 부러웠다. 아마 내가 아이를 낳은 걸 처음으로 후회한 게 그 때였던 것 같다.

내겐 아이가 하나 있다. 그 아이 하나 키우기 위해 정말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돈도 돈이지만, 모든 것을 ‘인서울’에 초점을 맞춘 아내의 교육관 때문에 겪은 갈등도 상당했다.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며 군대에 다녀온 나는, 평발인 아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기 위해 여러 병원을 다니며 마치 죄인이나 된 것처럼 의사들에게 굽신거려야 했다. 동기 부부가 회사를 그만두었던 때, 나는 평범한 부장이었고 나에게 회사란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곳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회사에서 무보직 부장으로 나이를 먹어가는 것만큼 힘든 게 없다는 것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일이다. 회식이든, 워크숍이든, 모든 회사 행사에 참여하면 참여하는 대로, 참여하지 않으면 참여하지 않는 대로 눈총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나이 들고 권력은 잡지 못한 만년 부장들이었다. 회사 생활의 고통이 정점을 찍던 그 시절, 내 아들은 유학생활을 시작했고, 나는 더더욱 철저하게 회사에 내 인생을 몰아넣어야 했다. 하지만,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하지 않던가. 그 동기 부부를 생각하니 인생이라는 레이스에서 결국 승리를 거둔 사람은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기 부부는 어딘가에서 저렇게 끌려가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 속으로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