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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

미스터리,스릴러 이민정

7년간 벌어진 7번의 살인 싸이코 투어, 다시 일어난 살인 유일한 목격자, 진실을 파헤치다

작품소개

연쇄살인의 기억을 관광화해 살아가고 있는 마을에 다시 연쇄 살인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마을에서 나고 자란 소년소년들이 이와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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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대도시로부터 떨어진 2번 국도와 17번 국도가 교차하는 지점에 있는 마을, 불타는마음은
예로부터 트레일러 기사들이나 운전자들이 쉬어가기에 좋은 중간 거점지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세대는 대다수가 살 길을 찾아 흘러 들어온 이주민들로 운전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30년 전,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마을은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는다.
상실감과 소외감을 견디지 못한 젊은이들은 대도시로 뛰쳐나갔다.
남은 자들은 ‘건조한 평원과 일출’을 상품화 해 돈을 벌어보려 하지만 이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을에 돈과 사람들을 끌어들인 건 15년 전에 나타난 연쇄살인마였다.
평원에 시체를 걸어놓는 그의 잔인하고 과시적인 수법이 화제가 되어 사람들의 흥미를 끈 것이다.
생존에 있어 오랫동안 무능함을 뽐내온 마을 사람들은 그때 어렴풋이 깨닫는다.
그것이 돈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던 차에 가짜 살인마가 검거되고, 마을의 경제적 시련이 계속되면서 마을 사람들은 노골적 속물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들은 살인마를 상품으로 한 축제를 기획하고, 수년간의 호황을 누린다. 그리고 현재, 살인마 사업은 더 이상 돈이 되지 않는다.
마을은 살인마 사업을 포장하기 위해(마을의 성공과 범죄의 연관성을 부인하기 위해) 만들었던 ‘살인의 역사’ 박물관을 철거할 것을 결정한다.
그리고 불투명한 단체인 SA10과 손을 잡고 축제를 개편해 새로운 손님들을 맞아들일 계획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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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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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속으로

총이 필요하다. 그것이 있다면 인생을 보다 명료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죽음을 생각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나는 권총을 머리에 대고 생각할 것이다.
‘자, 이제 나는 죽을 건데,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렇게 하면 당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좀 단순해지지 않을까.
총성이 나고 모든 감각과 의식이 정전을 일으키듯 꺼져버리기 전에 말이다.
그러나 죽는다 한들. 하고 싶은 일이 없다. 빌어먹게도 없다. 아무리 욕을 해봐도 없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애초에 머리에 권총을 들이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총 같은 걸 사용해야 하고 싶은 일을 알 만큼 아둔한 것도 아니고.
한숨을 쉰 후 상상 속 권총의 안전장치를 누르고 공이치기를 푼 후 그것을 오른쪽 귀에 댄 채 빵빵 쏘아버린다.
상상이라는 게 이렇듯 한심하다. 두 방이라니. 나는 그저 죽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곧 죽어도 상관없어, 하고 생각한 후 허허벌판 위에 벌거벗은 채로 누워있는 오기를 바라본다.
펼쳐진 풍경 전방 20km 내외로는 당분간 아무런 그늘도 없다. 엄폐물도 없다.
보이는 거라곤 지평선 앞에 홀로 솟은 5m 높이의 암석뿐이다.
지질학적으로 어떻게 저것만 홀로 남을 수 있었는지 의문인 그런 바위였다.
죽은 평원 위에 세워진 비석 같았다. 보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해가 기울면서 그것의 그림자가 평원을 조롱하듯 길게 늘어서 있었다.
오기는 그늘을 벗어난 채로 누워 있다. 어쩌자고 저런 데 누워있는 거지?
태양에 노출된 땅이 공기를 끓이고 있었고, 그대로 두었다가는 다른 생명체들이 그러했듯 그 역시 가진 수분을 모두 잃고 말 것이다.

그와 별개로 나는 남자 성기는 처음 보았다. 영상 밖에서는.
오기가 종종 그렇게 벌거벗고 다닌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보기는 처음이었다.
보라고 내어놓은 거겠지. 외계 생명체를 보는 듯한 놀라움이나 감흥은 없었다.
찬찬히 그것을 바라봤지만 곧 흥미가 떨어졌다. 발소리를 내며 그에게 다가갔다.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소리를 들었을 법도 한데 그는 눈을 뜨지 않았다. 나는 태양을 등진 채 오기 앞에 섰다.
그의 얼굴과 몸에 그늘이 생겼다. 등이 따가웠다. 어쩌자고 여기 누워있는 거지? 
그런 상태로 있으면 화상을 입을 게 뻔했다. 그 앞에 가만히 서 있으니,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눈을 떠 나를 바라보았다.
눈에 짜증이 어렸다. 나는 시선을 내려 그의 배 언저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할 말이 있어.”
그는 눈을 돌려 바위를 힐끔 본 후 다시 눈을 감았다.
“무시하든 말든.”
“하지 마.”
“할 건데.”
“…….”
“좋아해.”
그가 신경질적으로 몸을 일으켜 앉았다. 내가 그의 목 언저리를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사랑해.”
그가 나를 쏘아보았다. 나도 마주 쏘아보았다. 이대로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꺼져.”
욕을 하다니. 순간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게 있었다. 나도 말했다.
“고백을 하는데 꺼지라니, 이 미친놈이!”
“…….”
“미안. 어쨌든 사랑한다고.”
“내가 꺼질게.”

그가 한숨을 내쉰 후 일어났다. 그는 알몸으로 다운타운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가 옷 하나 없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묻는다고 대답을 해 줄 것 같지도 않았다.
묻기를 포기하고 그를 따라 걸었다. 벗은 엉덩이가 예뻤다. 저런 걸 복숭아 같다고 말하는 건지도 몰랐다.
날렵하게 들어간 허리와 어른이 되려하는 탄탄한 등선을 바라보았다. 왜인지 모르지만 조금 슬퍼졌다.
나도 안다. 투지나 근성이 있다고 해서 사랑이 성사되는 것은 아니다. 거절당한 게 처음도 아니었다.
졸업반이 되기 직전부터 약 6개월 동안 이 짓을 해 왔으니, 내가 가늠하는 것만 해도 다섯 번이 넘었다.
그러려고 한 건 아니지만 한 달에 한 번 꼴로 고백을 해 온 셈이었다.
그러나 거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해서 마음이 찢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보이지는 않아도 나는 거기에 제법 많은 것들을 걸고 있었고, 아니 사실은 거절당하는 게 끔찍했다.
고백을 하고 나면 늘 달아나고 싶어진다. 그저 참을 수 없어서 이야기 하고, 그 참을 수 없는 감정이 혼자만의 것임을 확인하며
이불이라도 물어뜯을 수 있는 곳으로 달려가 ‘그래, 넌 용감했어. 그랬으니 됐어.’ 하고
홀로 어깨를 두드리며 울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말자고 결심했다. 투지나 근성이 사랑을 성사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함께 있는 동안은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아도 괜찮다. 정말로 마음이 남아나지 않는 때는 혼자 있는 때다.
그런 때에는 어디에서 권총이라도 훔치고 싶어진다. 정말로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안다.
그리고 사실 이것은 좀 바보 같은 짓이기는 한데, 나는 이렇게 그를 따라 걸음으로써 스스로에게 뭔가를 입증해 보이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네가 나를 아무리 거절해도 나는 도망치지 않는다, 우리를 놓지 않는다, 하고 턱을 든 자세로 자랑을 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그런 오만한 구석이 있으니까. 한숨이 나왔다. 고개를 숙인 채 불가피하게 그의 엉덩이를 바라보며 계속 걸었다.

주말 오후였지만 시내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한때 호스텔과 레스토랑, 관광 상품 판매점, 번잡한 상가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먼지 쌓인 잡지가 진열되어 있는 상점, 우체국, 식료품점과 카페를 겸하고 있는
주유소, 셀프 세탁소, 오락실, 지역민들에게 없어선 안 되는 토박이 펍 같은 실용적인 것들밖에 남지 않았다.
거리로 나와 있거나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상점 사람들은 오기를 보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경찰에 신고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오기의 부모님에게 항의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오기가 여전히 벌거벗은 채로 돌아다닌다는 점이었다.
승패를 따지자면 그가 이겼다. 길을 걷던 중에 작은 실랑이가 하나 있었지만 그도 그 뿐이었다.
사람들은 도시의 부조리를 내면화 해왔듯 오기 역시도 하나의 풍경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그를 따라 걸으며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었다.
호기 카마이클이 27년도에 작곡한 재즈였는데 듣고 있으면 위로가 됐다.
그것을 흥얼거리자 오기가 움찔했지만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내 이런 행동들이 유치하다며 지긋지긋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바라는 건 크게 없었다. 이런 식으로 유치하게 살다가 급사해버리고 싶은 소망도 있었다.
죽으면 관에는 들어가지 않을 생각이니 화장을 하게 된다면, 그리고 내게 영혼이 있다면,
나는 공중에 뼛가루로 ‘유치, 유치, 개유치’ 하고 새긴 후 바람 속으로 사라질 의향도 있었다.
다만 원하는 건 도망치지 않고 그 시간 속에 있는 것뿐이다. 조금은 즐거운 마음으로. 이건 위선일까.

“집으로 가는 거야?”
오기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의 부모님은 자그마한 호텔을 경영하고 있었다.
방도 17개밖에 없는 모텔 규모의 사업장이었지만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오기의 부모님은 숙박소의 간판을 거창하게 호텔로 달았다. 이름은 ‘아문센국도호텔’이었는데
그 역시도 남극 탐험가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아저씨 쪽이 예전에 세계 일주를 하려다
아주머니를 만나 그것을 좌절하게 되었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지만 모르겠다.
아저씨의 얼굴에서 탐험가의 느낌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키가 크고 포동포동한 몸, 이목구비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괜찮은 얼굴이었지만 그것들을 모아놓고 보면
어딘가가 제대로 조여지지 않은 듯 헐겁고 엉성하게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눈이 부드럽고 속눈썹이 긴 데 비해 코는 귀염성 없게 컸으며 입은 또 지나치게 작았다.
탐험가보다는 몽상가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오기 아버지를 놀리기 위해 그를 아문센이라고 부르곤 했다.

“이봐, 아문센. 남극은 좀 어떤가?”
그러면 누군가가 다시 말을 받았다.
“아문센은 남극에 간다고 동료를 버리고 개 사료를 퍼먹던 치 아닌가? 이봐,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는 사실이 증명하는 게 뭔지 알아?”
“뭔데?”
“그 자가 사기꾼이거나 미친놈이라는 사실이야. 하나 더, 호텔 아문센과 탐험가 아문센의 연관 관계가 뭔지 알아?”
“음, 개 사료?”
그리고 사람들은 오기아버지의 둥근 몸을 훑어보며 웃음을 터뜨리는 식이었다.
그 자리에서 웃지 않는 건 오기 아버지뿐이었다. 그는 눈을 깜빡이며 그와 같은 모멸에 대해 화를 내도될까,
고민하다 늘 그 시기를 놓쳐버리곤 했다. 화제는 순식간에 다른 것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요 몇 년 그를 본 일이 없었다. 오기 말로는 그가 집 안에서 드라마를 보며 먹어대고만 있다고 했다.

오기의 부모님은 호텔 뒤편 방갈로에 살며 호텔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마 사오 년 전부터는 흑자를 본 일이 없을 것이다.
이 도시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상가 사람들 대부분이 겪고 있는 일이기도 했다.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한 이런 식으로 모두의 삶이 내려앉아 버릴 터였다. 우리는 끝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부채와 갚아 나가야 할 상환금, 계속되는 적자. 오기는 분노를 품은 채로 모두가 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우리에게 정당하다고 말이다. 나의 생각은 좀 달랐지만 모르겠다.
나는 그때 그에게 ‘삶이 정당함을 향해가기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오기의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나조 씨는 호텔 마당에 나와 의자에 앉은 채로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요 며칠 그녀를 본 일이 없으니 간만의 일인 듯했다.
그녀는 벌거벗은 오기를 보고는 담배를 쥔 손을 흔들며 호탕하게 웃었다.
숱 많은 흰색 머리카락과 큰 그녀의 얼굴에 많은 양의 빛이 머물고 있는 듯했다. 오기가 반색을 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제 좀 괜찮아요?”
그녀가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손을 저었다. 오기가 나조 씨 옆에 주저앉았다. 나는 그 반대편 옆으로 가 앉았다.
그가 나를 힐끔 바라봤지만 별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녀가 오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도 광란의 태닝을 한 모양이구나.”
“맞는 옷이 없어요.”
“어머니가 사 준 옷을 입지 그러니.”
그는 나조 씨에게서 담배를 받아 피우며 말했다.
“다들 벗은 몸을 가지고 지껄여댈 뿐이에요. 사람이 죽어나가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면서.”
나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나조 씨에게 일러 바쳤다.
“여기에 오는 길에도 꼬맹이 하나가 오기를 죽여 버리겠다고 달려들었었어요.”
“호오, 용감한 꼬맹이로구나. 그래서?”
“오기가, 죽어야 할 건 내가 아니라 너희 부모들이라고 말했어요.”
나조 씨는 피식 웃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질책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칭찬도 아니었다.
조용히 연기를 내뿜으며 그것을 바라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네 몸이 워낙 멋져서 그런 것 아니겠니? 벌써 처녀 하나가 홀려서 따라왔잖니.”
나조 씨가 나를 보며 웃었다. 그녀가 나에게 담뱃갑을 내밀며 물었다.
“피겠니?”
“내년부터요.”
오기가 코웃음을 쳤다. 그는 내가 미성년이기 때문에 그러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화가 치밀었다.
“내가 좀 늦게 시작해야 네가 폐암으로 가는 걸 볼 수 있지 않겠어? 죽는 모습까지 지켜봐 줄게. 사랑해.”
그의 눈에 살의가 지나갔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내가 죽는 꼴도 보겠다고?”
나조 씨가 깔깔대고 박수를 치며 웃었다. 마당 빨랫줄에 걸려있는 침대보들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리던 오기가 말했다.
“몸은 좀 괜찮아요?”
“음, 약 기운에 몽롱해서 그렇지 나쁘지 않구나.”
그녀가 오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오기는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있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대는 걸 허락하는 상대는 그녀뿐이라는 사실을. 그러나 그가 허락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의 맨살에 손을 얹을 수 없을 것이다. 내 얼굴이 울적해 보였는지 그녀가 내 어깨에도 손을 얹었다.
무릎을 끌어 모아 거기에 턱을 괴었다. 간만에 숨을 쉬는 것 같았다. 예전에 그녀는 이런 시간들을 ‘가면 같은 시간’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가 흉한 속살 위에 얹힌 얇은 가면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그 밑의 얼굴을 대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가면이 영원히 벗겨지지 않기를 바랐다. 이것이 벗겨지지 않을 수 있다면 영혼까지 팔아넘길 셈이다.
사 줄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지만. 그런 날을 위해 영혼을 갈고 닦을 생각이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오기.”
편안하게 고개를 늘어뜨리고 있던 그가 얼굴을 들었다.
“그 이야기 들었니?”
“무슨 이야기요?”
“못 들었나 보구나.”
나는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나조 씨는 오기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려 하고 있었다.
그녀가 말하는 편이 나았다. 나도 그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도저히 그를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몸 안 에너지 탱크가 부서진 것처럼 온몸이 땅 밑으로 꺼져 내리는 것 같았다.
좀 전의 나는 어머니에게 그 소식을 들은 후 무엇을 어찌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집을 뛰쳐나왔다.
정신없이 그를 찾아 다녔다. 그리고 고백을 했다. 그걸로 그의 정신을 빼놓을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기를 바랐다. 이야기 속에서는 사람들이 잘도 귀를 막아대지 않는가, 사랑 때문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는 고백을 잊었을 것이다. 노력한 것들은 금세 허사가 된다. 인생의 묘미는 그런데 있다지만
글쎄, 나는 패배밖에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것도 내 뜻대로 되는 게 없다. 내가 들어도 바보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조 씨, 그냥 말하지 마요.”
나조 씨가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오기가 물었다.
“뭔데요?”
“박물관을 철거한다는구나.”
아아, 말해버렸다. 오기가 벌떡 일어났다.
“이제 와서?”
“이제 와서.”
“기어코?”
“기어코.”
“누구 마음대로?”
나조 씨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조 씨를 바라보던 오기는 빨랫줄로 달려 나가 하얀 이불보들을 내팽개쳤다.
그리고 그것들의 겉감을 찢어버렸다. 그 소란에 그의 어머니가 뛰쳐나왔다. 가면의 시간, 일광욕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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