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서울, 카타콤

미스터리,스릴러 이봄

서울 강남역 밑에는 카타콤이 있다. 그곳에는 세상이 버린 사람, 세상을 버린 사람이 산다.

작품소개

카타콤은 로마와 파리 등에 조성된 지하 공동묘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핍박받고 버려진 사람들이 모여들거나 지상에서 묻어주지 못한 사람들이 묻히는 곳이었다고 한다. 《서울, 카타콤》은 ‘서울에도 카타콤이 있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시작된 소설이다. 책을 펼치는 순간 마치 빨려 들어가듯 주인공 ‘나’와 함께 서울 한복판의 카타콤 속으로 모험을 떠나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발밑에 존재할 것만 같이 생생한 묘사와 계속되는 절망 속에서도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인물들의 끈기가 색다른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작품소개 열기

시놉시스

불금의 화려한 강남 한복판, ‘나’는 어두컴컴한 건물 사이에 뚫린 구멍으로 조용히 사라진다. 아무도 자신을 찾을 수 없는 지하 깊은 곳까지 내려가기로 결심한 ‘나’는 그곳에서 놀라운 경험을 한다. 지하철 승강장과 이어진 거대한 지하 공간에는 치열한 서울의 삶을 견디지 못하고 흘러 내려온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나’는 우연히 지상과 이어진 터널에서 어린 남매 ‘선아’와 ‘승우’, 그리고 ‘화연’을 만난다. 화연은 ‘나’를 언니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따른다. 세 사람과 함께하며 ‘나’는 서서히 생기를 되찾는다. 세상을 버리고 죽은 듯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지상의 하늘을 갈망하는 화연은 ‘나’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세 사람과 함께 지상으로 되돌아가는 꿈을 꾸던 어느 날, 화연이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는데…….
시놉시스 열기

작가소개

미국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했다. 대학원에서 정책과 분쟁조정을 공부한 뒤 낮에는 보고서를, 밤과 주말에는 이야기를 쓴다. 《서울, 카타콤》이 첫 소설이다.
작가소개 열기

작품속으로

만나야 하는 사람과 가야 할 곳에 집중하느라, 웬 여자가 다리를 절며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사람들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자.
저 아래로. _10쪽

뒤를 돌아보니 건물 입구의 불빛이 새까만 밤하늘에 박힌 작은 별처럼 멀리서 반짝이고 있었고, 손을 더듬으니 바닥에 고인 물이 찰박거렸다. 네모반듯한 통로는 거대한 지하 미궁 같았다. 빙글빙글 돌다가 같은 곳을 몇 번이나 지나치기도 했다. 서울 전체를 지하로 뒤집어놓은 듯 커다란 공간은 끝없이 복잡하게 펼쳐져 있었다. _11쪽

길은 개미굴처럼 불규칙하게 구불구불 펼쳐져 있었다. 기어가야 할 만큼 좁은 통로도 있었고, 차 한 대는 거뜬히 지나갈 만큼 넓은 곳도 있었다. 통로 여기저기 움푹하게 파여 마치 방처럼 아늑한 공간도 있었다. 악취도, 추위도 덜했다. 손으로 벽을 쓸자 부드럽게 손자국이 났다. 소리도 흙이 먹어버리는 것 같았다. _18쪽

지상의 복작대는 소음과 불빛 대신, 정적과 어둠이 차분히 스며들었다. 정체된 지하의 공기는 물에 풀어놓은 물감처럼 서서히 체온을 낮추고, 시야를 어둡게 하고, 맥박을 늦추고, 숨결을 부드럽게 걸러줬다. 치열하지도 않고, 복잡하지도 않은, 죽음과도 같은 시간. 강바닥으로 끝없이 가라앉아 조용히 자리 잡은 침전물처럼 그저 존재할 뿐이었다. 평화로웠다. _19쪽

“왜, 나름 좋지 않냐? 배산임수. 저어기, 산.” / 어르신이 손가락으로 높이 쌓인 돌무더기를 가리켰다. / “그리고 저어 아래, 물.” / 이번에는 반대쪽 벽의 입구 너머 저수지 쪽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 “명당도 이런 명당이 어딨냐.” _29쪽

마음이 땅으로 꺼지는 듯한 느낌에 비하면 몸이 아픈 건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절망은 오늘의 노력이 고단해서가 아니라, 그 노력이 일말의 희망조차 불러올 수 없다고 느껴질 때 왔다. 나는 절망했었다. 하지만 지하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예 달리기를 포기했으니까. _47쪽

"뭐, 손볼 데가 많긴 하지만 이만한 곳도 없지. 사람들도 괜찮은 것 같고. 물이 있는 게 제일 좋고.” / “뭐, 다 그래봤자다. 어차피 우리가 떠나온 데처럼 사람들 모이면 싸움 나고 치고받고 하는 거지. 특히 여기 아래로 내려온 인간들은…… 글쎄. 위에서도 제대로 못 사는데 아래에서라고 제대로 살 리가.” / 표 교수는 마치 자신은 지하에 내려온 사람이 아닌 것처럼 혀를 차며 한오가 사다리를 노끈으로 단단히 고정하는 것을 바라봤다. _85쪽

만약에, 정말 만약에, 내가 선아처럼 반항할 줄 알았더라면 다치지 않았을까. 도망가지 않고 선아처럼 다시 한번 경찰이라도 찾아갔으면, 계단에서 구르지 않고 다리도 다치지 않았을까. 그럼 지금 화연과, 선아와 함께 뛰어갈 수 있었을 텐데. _92쪽

“예전 일을 기억하는 건 산 사람들이나 하는 거다. 뭔 일이 있든 우리가 기억해서 뭐하게.” / “이렇게 크고 복잡하고 오래된 지하에 별일이 다 있었을 테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별의별 사람이 왔을 거고 별의별 일이 있었을 거야. 우리는 딱히 결정권이 없어. 위에서 흘러오는 대로 쌓이는 것뿐이지.” _101쪽

화연은 항상 챙겨줘서 고맙다고 말하며 화사하게 웃어 보였다. 나에게 빵을 하나 건네며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라고 물었고, 그 뒤로 난 화연에게 언니가 되었다. _105쪽

“그래서 어쩌라고. 다른 사람 위해서 한 일이 나한테도 중요하면 오히려 좋은 거 아니야? 나 혼자서는 살아갈 의지가 없어도, 남이 더 소중하면 그렇게 살 수도 있잖아. 내가 받고 싶은 사랑을 남에게 주고, 내가 필요한 위로를 남에게 전하고, 내가 원하는 희망 남에게라도 남기고. 자기만족이라 해도 원래 그러면서 사는 거래. 나를 위한 건지 너를 위한 건지 모르게 되면서 우리를 위한 게 되는 거지.” _108쪽

“지상엔 저런 인간들투성이였어. 애들이라고 지 입맛대로 이용하고 휘두르려는 쓰레기들.” / 어르신도 비슷한 말씀을 했었다. 지상에 있든 지하에 있든 하던 짓 똑같이 한다고 했지. 화연의 시선이 천천히 내게로 향했다. / “나, 올라가면 이번에는 제대로 살고 싶어.” _166쪽

아이들은 주머니에 있던 분필 몇 조각을 꺼내 화연의 무덤 근처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화연의 무덤 가장자리를 따라 빙 두른 작은 돌덩이들 위에도 구름과 꽃을 그려놓았다. 지하에 사는 사람들과 방의 풍경까지 보였다. 긴 머리 치렁치렁하게 내리고 이불에 동그랗게 말린 나도 보였고, 몸집 큰 은혁과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앉아 있는 어르신, 어르신 방의 탁자와 과자 더미도 보였다. 큰 배낭을 멘 표 교수는 한 손에 책을 들고 뭔가 가르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삐뚤어진 안경을 쓴 한오 옆에는 가지런히 쌓인 상자들과 초록 모자를 쓴 양 씨 할아버지의 화난 얼굴도 있었다. _193쪽

나오는 것은 나오기를 결심하는 것보다 쉬웠다. 내려왔던 길과 반대로 하염없이 위로, 위로 올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길은 모두 이어져 있었다. _236쪽
책 속으로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