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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터 아이

SF 김윤

실수로 태어난 테스트 아이로 인하여 성장해 나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

작품소개

네가 처음 내게 배운 게 ‘너’였는데.
나중엔 내가 너로부터 ‘나’를 배웠다는 걸 깨달았어.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배우는 건가 봐.
나의 이야기를 너의 세계에서 읽을 때
부디 마음에 들어 하길.
늘 그랬듯이, 무한한 사랑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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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가까운 미래, 인간의 모든 행동은 생체인식 컴퓨터 및 개인 알고리즘으로 저장되어 의료, 교통, 직업 등의 분야에서 선택을 추천하고, 때로는 대신 선택하기도 하는 등 대부분 자동으로 진행된다. 주인공이자 만화가인 서동성은 오늘도 딸의 얼굴을 끝내 보지 못한 채 꿈에서 깨어난다. 그렇게, 반복되는 악몽에 지친 나날을 보내며 본업인 그림 작업은 며칠째 제자리다.
그러던 어느 날, 게임 회사에 다니는 친구 심규석의 전화를 받는다. 그 친구를 만나 현재 별거 중인 아내 에이미와의 이혼 조정 이유와 한순간에 자신이 잘못된 선택으로 잃어버린 아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규석에게 개발 중인 ‘스스로 생각하고 선별하는 완전한 인간형 AI 프로그램의 테스터’를 제안받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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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순천향대학교 미디어학부를 졸업하고 단편, 장편, 웹툰, 웹소설 등 장르와 형식을 가리지 않고 우울하지만 상냥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언젠가 세상을 바꿀 위대한 작품을 남긴 대작가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교보문고 스토리크리에이터 3기’를 수료하며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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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속으로

“좋은 아침입니다, 작가님. 오늘의 아침은 간단한 프라이업입 니다.”
“그게 뭔데?”
남자가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 채로 물었다. 그렇지만 ‘선화’ 는 여전히 성실하게 대답했다.
“프라이업은 브리티시 브렉퍼스트로 빵, 달걀 프라이, 베이 컨, 소시지, 블랙 푸딩 등이 나오는 영국의 전통적인 아침 식사 혹은 이른 점심을 뜻하는 말입니다.”
“내일은 한식이 좋겠어. 그리고 지금은 저녁이야.”
“작가님이 늦잠을 주무신 겁니다.”
꾸중하듯 대답을 마친 어시스턴트 핸드인 선화는 서둘러 부엌으로 들어가 자신의 몸인 긴 다섯 마디의 매끈한 손가락으로 아침 같은 저녁을 준비했다. 남자는 그 모습을 멍하니 보다 대충 고개를 흔들어 잠을 쫓고 씻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선화, 메일 온 거 읽어줘.”
“작가님 계정으로는 총 2건, 서동성 님 개인 계정으로는 총 1건, 에이미 님에게서 온 메일이 있습니다.”
세면대 아래 타일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선화의 칼칼한 목소 리가 계속 들려왔다.
남자, 동성은 면도하고 입 주위에 묻은 물을 수건으로 닦았 다. 거울의 가장자리에 오늘 날씨가 표시되었다. 동성은 그 옆으로 보이는 충혈된 자신의 눈보다 더 건조하게 대답했다.
“삭제해 줄래?”
“법원 관련 중요 메일은 삭제할 수 없습니다.”
오늘따라 선화의 기계적인 대답이 더욱 건조하게 들려왔다.
동성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생각했다. 이 의미 없는 대화에 쓴 시간이 몇 분이지?
“일하는 계정으로 온 내용은 뭐야? 마감 지키라고?”
“맞습니다.”
“그럼 그냥 ‘읽음’으로 표시해 줘.”
“알겠습니다.”
- 1.

“그럼, 이번에 내가 만든 게임 운영 체제 QA 좀 해볼래? 저번 처럼 원고가 안 풀릴 때 그냥 조금 쉰다는 마음으로.”
“그게 뭔데?”
“간단해, 그냥 켜두고 사고 처리 레벨만 좀 올려서 나중에 가져다주면 돼.”
“저번처럼 켜두고 관찰하란 거지?”
“응, 브랜드화하기 전까지. 일단은 여기 확인해 봐.”
이전에도 이런 식으로 동성을 불러내 가끔 일거리를 맡겼던 규석은 꼭 준비해 놓은 것처럼 가방 안에 있던 작은 상자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상자 안에는 작은 하드 디스크와 병원 자율 진료 시스템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처방전처럼 작은 글씨가 인쇄된 설명서가 들어 있었다.
“이게 다 뭐야?”
“상자 안쪽에 있는 QR 코드 인식하면 자동으로 실행될 거야.
네가 따로 할 건 없어.”
“뭐 이번에도 버그 같은 걸 찾아서 기록하면 되는 거야? 나중에 완성되면 시제품을 받고?”
전에도 원화 작업이나 테스터 등 규석이 맡긴 일을 했었던 경험을 떠올리고 동성이 다시 물었다. 규석은 잠깐 말을 멈췄다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아니, 이건 좀 달라. 잘되면 오히려 버그를 만들어 내겠지.”
“무슨 말이야?”
“아니야, 딱히 너희 집에 있는 운영 체제나 어시스턴트 로봇 들이랑 다를 건 없어.”
“그럼 이건 게임이 아니잖아.”
동성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다시 지어 보였다. 근데 그게 조금 이상했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뭐였더라. 아니, 비사이로 번지는 빛처럼 대화에 낀 잠깐의 침묵 동안 다시 생각해 보니 상대방의 기분을 파악하거나 표정을 읽는 것마저도 이젠 어려웠다.
“널 복사한다고 해야 하나. 네 계정으로 했던 모든 걸 학습하고 생체 인식 컴퓨터 데이터를 백업, 너라는 알고리즘을 동기화 하면……. 아니다, 해보면 알 거야. 그냥 조금 쉰다고만 생각해.”
“난 쉴 수 없어. 마감, 알잖아?”
규석의 말에 동성이 대답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이번 프로그램에서 오류가 생겼거든.”
“오류?”
“팔을 움직이기 어려워서. 이건 그것보단 쉬울 거야. 그냥 집가서 실행해 봐.”
규석은 자판을 두드리는 것처럼 손을 들어 보이더니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동성은 그 의미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답했다.
“아무튼 일거리 고마워. 너도 좀 쉬어. 그러다 탈 난다.”
규석은 실없이 웃으며 팔을 로봇처럼 흔들었다. 동성은 그런 규석의 행동을 또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금 테이블 위의 상자를 유심히 봤다. 로마 숫자로 ‘Ⅰ’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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